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(수정 질문)김대중이 외환위기를 일으켰다??


???????????????????????????????????????????????????????????????????????


+이미 답글이 달렸네 ㅡ_ㅡ 고로 밸리에서 내림


+질문 수정

별 의미가 없긴 하지만 김대중이 YS말대로 정말 반대했는지 궁금.

참고 기사 : http://news.sbs.co.kr/section_news/news_read.jsp?news_id=N1000577991


일연은 발해를 어떻게 봤을까??+ 발해를 한국사의 일부로 봐야 할까??

잠깐 짬이 난 틈을 이용해 적은 포스팅. 아마 거의 마지막 포스팅일듯.ㅇㅇ

"삼국사기에는 삼국유사와는 달리 발해가 빠져서 문제"라는 반응이 있더군요.

자 그러면 삼국유사에 발해가 어떻게 기록되어있는지 볼까요??


통전 (通典)≫에 이르기를 “발해 는 본래 속말말갈 (粟末靺鞨)[譯註 001] 로서 그 추장 조영 (祚榮) [譯註 002] 에 이르러 나라를 창건하고 자칭 진단 (震旦)이라 부르더니 선천(先天) [譯註 003] 연간현종(玄宗)의 임자(壬子)년이다. 비로소 말갈 이라는 이름을 버리고 오로지 발해 라 불렀다


 이상의 여러 글을 참고해 보면 발해는 말갈의 별종으로 다만 그의 창건과 병합이 같지 않을 뿐이다.

백제 (百濟) 말년에발해 말갈 과 신라가 백제 의 땅을 갈랐다.”라고 하였다.이에 의하면 말갈발해 (鞨海)가 또 갈라져 두 나라로 된 것이다



백제 말년에 웬 발해??그리고 창건과 병합이 같지 않다는 건 무슨 말일까??? 일단 발해=말갈이라고 보는 건 확실한 것 같다..

그러나

고[구]려의 남은 자손들이 한데 모여 북쪽으로태백산(太白山) 밑을 의지 삼아 나라 이름을발해라 하였다.


고(구)려의 옛 장수조영의 성(姓)은 대씨(大氏)니

 발해국압록(鴨綠)
[註 001] ·남해(南海)[註 002] ·부여(扶餘)[註 003] ·추성(橻城)[註 004] 4부(四府)는 모두 함께 고[구]려 의 옛 땅이니 


이런 기록들도 있다. ㅡ_ㅡ

우선 하나하나 차근차근 생각해보자.

고구려의 옛 땅에 세워졌다고 해서 발해인=고구려인이라고 할 수 있을까??

예를 들어보자. 원 나라의 땅은 한족들이 살던 땅이다. 그러나 원나라는 몽골족이 세운 국가다. 마찬가지로 발해의 땅이 고구려의 옛 땅이어도  발해인=고구려인이라고 섣불리 말할 수 없다. (여기서 고구려인이란 고구려에 흡수된 말갈 계가 아닌 우리가 흔히 말하는 고구려인)

일연이 발해=말갈 별종이라고 한 걸 보아 "고구려의 옛 장수", "고구려의 남은 자손들"은 우리가 흔히 말하는 고구려인이 아니라 고구려의 영향권에 있었던 말갈 인을 지칭하는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.

결국 일연은 발해는 고구려의 후신이긴 하지만, 같은 동족으로 보지 않았다는 걸 알 수 있다.

<삼국사기>도 이와 비슷한 맥락 때문에 발해를 기록하지 않았다고 추측할 수 있다.


+

발해를 말갈로 보는건 <삼국유사>뿐만이 아니다. <성호사설>,<고려사절요>,<연려실기술>,<미수기언>,<해동역사> 심지어 <발해고>에도 대조영은 속말말갈 출신으로 나와있다. 

중국측 사서인 <구당서>와 <신당서>에는  이렇게 기록되어 있다.


渤海大祚榮者 本高麗別種也<구당서>
 

渤海本粟末靺鞨 附高麗者姓大氏<신당서>


<구당서>에는 발해가 고려(고구려)의 별종으로, <신당서>에는 발해를 속말말갈로 기록되어 있다.


한국에서 발해=한국사로 주장할 때 내세우는게 바로 <구당서>인데 <구당서> 대목에 주목할 부분이 있다.

바로 "별종"

왜 그냥 고구려인이라고 기록하지 않고 "별종"이라고 기록했을까?? 그 이유는 바로 발해가 우리가 흔히 말하는 고구려인이 아닌, 고구려에 종속된 말갈인이어서 "별종"이라고 적은게 아닐까??


여기까지 오면 "식민빠"라는 반응을 보일 작자들이 있을텐데 안타깝게도(?) 본인은 "발해=중국사"라고 생각하지 않는다.


실제로 여러 사료들을 종합해보면 대조영은 중국이 아닌, 고구려에 속해 있던 사람이라고 나와있다.


자 그렇다면 발해를 한국사로 봐야할까 보지 말아야할까??


우선 중국보다는 우리나라와의 관계가 더 밀접하다. 왜냐하면 발해는 그 출신이 어찌되었간에 분명 "고구려에 속했던 사람들"이 세운 국가이기 때문이다. 그렇기에 "발해=한국사"라고 볼 수 있다.

하지만 말갈은 옛날부터 우리와 밀접한 관련이 있었으므로(ex백제 침략) 우리 역사에서 다루긴 하지만 우리역사에 포함시키지 않는다. 이 점에서 "발해≠한국사"라고 볼 수도 있다.

참으로 난감한 문제다.


+ 위에 삼국유사의 "그의 창건과 병합이 같지 않을 뿐이다." 부분은 앞의 "발해는 말갈의 별종"이라는 구절로 보아 다른 말갈(ex흑수말갈)들과 다르다는 뜻 같습니다.


















김부식은 신라에 유리하게 사료를 조작했을까?

14년 봄 정월에 말갈 (靺鞨) [註 001] 이 북쪽 변경에 대대적으로 침입해 관리와 백성들을 죽이고 사로잡아 갔다.

가을 7월에 또 대령 책(大嶺柵) [譯註 001] 을 습격하여 이하 (泥河) [註 001] 를 지나니 왕이 백제에 글을 보내 구원을 청했다. 백제가 다섯 장군을 보내 도우니 적이 듣고서 물러갔다.

가을 7월에 가야 를 친히 정벌했다. 보병과 기병을 이끌고 황산하 (黃山河) [譯註 001] 를 건넜는데 가야 사람들이 수풀 속에 복병을 두고 기다렸다. 왕이 알아차리지 못하고 바로 나아가니 복병이 출현해 몇 겹으로 둘러쌌다. 왕은 군대를 지휘해 떨쳐 공격해 포위를 뚫고서 퇴각했다

가을 9월에 고구려가 북쪽 변경을 습격하여 과현 (戈峴) [註 001] 에 이르렀다

겨울 10월에 [고구려가] 호산성 (狐山城)을 함락하였다

5년 여름 5월 왕은 태종 이 직접 고구려를 치면서 신라에서 군사를 징발하였다 [譯註 001] 는 소식을 듣고, 그 틈을 타서 신라를 습격하여 7성을 빼앗으니, [譯註 002] 신라에서 장군 유신 을 보내 공격하였다.

겨울 10월에 신라의 가잠성(椵岑城) [註 001] 을 포위하여 성주 찬덕 (讚德) [譯註 001] 을 죽이고 그 성을 함락시켰다

겨울 10월에 신라의 속함 [譯註 001] , 앵잠 [譯註 002] , 기잠 [譯註 003] , 봉잠, 기현, 용책 [註 001] 등 6성을 공격하여 함락시켰다


이상 <삼국사기> 기록의 일부이다.

김부식이 <삼국사기>를 편찬하면서 사료를 조작했더라면 저런 기록들은 남아있지 않았을텐데 왜 있을까??

더군다나 삼국 통일 과정에서 고구려,백제의 많은 사료가 유실되었음에도 불구하고 통일 이전 삼국의 기록을 비교해보면 고구려 본기의 양이 가장 많다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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